논현동 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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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길고양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진 않는다.
그냥 길에서 사는 고양이를 뜻하면 몰라도,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는
"천덕꾸러기" "버려진 고양이" "불쌍한 고양이"의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썩 좋아하진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네.. 나도 길고양이.. 라고 부르게 되니까.
대신 저런 뜻을 내포하지 않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었음 하는 마음.
그냥 저 예쁜 고양이를 만난 곳이 "길"이라는 것 뿐이니까..

회사가 있는 논현동은 경사가 심한 동네라서
출퇴근 길엔 오르막 경사가 낮은 골목길로 다니는 편인데,
걷다보면 가끔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곤 한다.
대부분 길고양이들이 그렇 듯 사람과 마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도망을 가곤 하는데..

지난주였나?
내가 지나가다 발견해곤 서서 쳐다보는데 꼼짝도 않고 "볼테면 봐라"는 식으로
눈을 한번 꿈뻑하더니 고대로 앉아서 잠을 청하는 삼색여아가 있었다.
(유전적으로 삼색털을 가진 고양이는 99% 여아임;)
도도한 그 녀석이 우습기도 하고 예쁘기도 해서 근처 편의점에서 참치캔 하나를 사왔다.
다행히도 어디가지 않고 딱 그 자리에 있어주어서 앞에 앉아 캔을 딸깍 땄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캔을 따서 내려 놓자마자 머리를 박고 참치를 먹었다..

"배 많이 고팠어?"
물어보는 내 말을 알아 듣는건지 어쩐건지..
정신없이 먹는 모습에 눈물이 다 났다.
캔 모서리에 베일까봐 바닥에 캔을 뒤집어서 참치를 쏟아부었더니 더 열심히 먹더라..
그 와중에 길 건너에 있던 까만 턱시도 고양이가 한마리 다가와 같이 먹기 시작했다.
길에서 살아가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그러하듯 배가 많이 주렸을것이다.
행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쫓아낼까봐 다 먹을때까지 옆에서 지켜보았는데,
이 녀석들이 지나가는 차나 오토바이 소리엔 꼼짝도 않더니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만 들리면 소스라치게 놀라더라.
참 씁쓸했다..

턱시도 아기는 나를 많이 경계하는 반면에
삼색아기는 그래도 어느정도 긴장을 풀어준 듯 해서 정말 기뻤다.
살아가면서 먹을 것을 준 고양이가 내 앞에서 먹는 걸 보는건 처음이었으니까..
대부분 도망갔다가 내가 자리를 뜨면 와서 먹더라고..

다 먹은 걸 확인하고 캔은 들고 가서 지하철 쓰레기통에 버렸다.
길에 버렸다가 애들이 핥아서 혀라도 베이면 큰일이니까..
지하철타러 걸어가는 길에 또 울었다.
밥보다 물이 더 중요하다던데 물도 사서 줄껄 하는 뒤늦은 후회도 있었고...

그리고 얼마 지나 바로 어제.
집에 가는 길에 그 삼색아기를 또 만나게 되었다.
저녁 그 시간쯤엔 항상 그 근처에 있는건지,
전에 밥을 주었던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식빵을 굽고 앉아 있었다.
게다가 어젠 비도 왔다...

"너 여기 꼼짝 말고 있어"
라고 말하고 또 얼른 뛰어갔다.
이번엔 편의점으로 안가고 슈퍼로 갔다.
편의점보다 좀 멀긴하지만 편이점엔 큰 사이즈의 캔은 팔지를 않더라고...

좀 큰 사이즈의 캔을 들고 돌아가는 길에 퇴근하는 회사 사람들을 만났는데,
길 고양이에게 밥 주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던 듯 싶다.
뭐, 그런 사람들도 있으니까 나 같은 사람들도 있는거지..

"먼저 가세요!"
라고 말하고 삼색아이를 찾아서 캔을 따 주었다.
일전에 함께 먹였던 턱시도 아이도 함께 있었다.
역시 원래 알던 사이였구나, 너네.

캔을 까서 바닥에 내려 주니 열심히 먹는다.
이전에 먹을때보다 경계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좀..
누군가가 해꼬지라도 한건가..
그래도 열심히 먹는거 보니까 기분이 참 좋더라.
다 먹을때까지 기다려주려고 쪼그려 앉아서 지켜보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깃거린다.
고양이한테 왜 밥주냐고 시비라도 걸면 싸울테세로 있었는데 다행히 시비거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옆에 쓰레기버리던 아줌마가 쓰레길 쾅! 내려놓는 바람에 골목이 쿵! 울려서 애들이 놀래긴 했지만.

두 녀석이 번갈아가면서 먹고 숨고 먹고 숨고를 몇번 반복하고 나니
어디선가 젖소아이가 튀어 나온다.
처음 보는 애긴데 너무 이뻤다.
녀석도 배가 고팠을테지..
처음이라서 다른 두 녀석보다 더 경계를 했지만
고픈배를 채우려고 내 앞쪽으로 조금씩 다가오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행여 못된 맘 먹은 사람들이 이상한 먹이를 주는걸 덥썩 먹진 않을지 걱정되고..
(서울 일대에서 치킨으로 고양이 잡아서 건강원에 파는 파렴치한도 얼마전에 있었으니까)

"니들은 내가 주는 것만 먹어, 알았지?"
하고 말은 해 두었는데 알아들었으려나....

거의 다 먹은 것까지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해서 캔 두개랑 작은 간식 몇개랑 져키를 챙겨 가방에 넣어두었다.
우리집 애들도 간식을 자주 먹는건 아니지만 애들이 먹지 않는 간식도 꽤 되기 때문에..

우리 애들은 집에서 엄마들이랑 같이 살면서 먹을거 가려가며 먹고 깨끗한 화장실쓰지만,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은 사람들이 먹고 버린 것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생각 같아선 보이는 족족 포획해 데려와서 키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적어도 보일때마다 배는 곪지 말라고 밥이라도 주려고 한다.

누군가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 하는 일도 아니고, 생색내고 싶어서 하는일도 아니다.
나는 길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명이 하루라도 더 오래 살아주었으면한다. 그냥 그 뿐이다.
그리고 적어도 사람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유기견, 유기묘를 싫어하진 않았으면 한다.

곧 날씨가 더 추워질텐데,
난 그래서 이젠 겨울이 좀 싫어진다.

Posted by 그린애플

2008/10/24 10:48 2008/10/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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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ex 2008/11/19 01:10 # M/D Reply Permalink

    아... 길에서 고양이들을 만나게 되면 왜이렇게 맘이 짠해지는걸까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일 하셨구만요 ^^

    1. 그린애플 2008/11/19 13:15 # M/D Permalink

      길고양이랑 친구가 되는 법을 아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거라는데,
      역시 방법은 밥입디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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